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치 독일/인물 (문단 편집) === 저항자 === 이 사람들은 [[나치]]가 온 독일을 공포로 물들이고 있을 무렵 그에 항거했던 진정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 [[에르빈 폰 비츨레벤]] ☆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참여한 유일한 독일군 원수이다. * [[하얀 장미]] ★ 나치 독일 당시 [[뮌헨]]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비폭력 저항 단체다. * [[에델바이스 해적]] ★ * [[모이텐]] ★ * [[스윙 청소년]] ★ * [[빌헬름 카나리스]] ☆ [[독일 해군]] [[대장(계급)|대장]]이자 독일 국방군 정보국 아프베어의 국장이다. 본래 나치 지지자였으나 히틀러의 행위가 독일을 파국으로 몰고 갈 것을 깨닫고 영국과 접촉하여 히틀러의 광기를 막기 위해 애썼다. 또한 그는 반나치 조직인 검은 오케스트라의 창립 인원이며,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수많은 사람을 구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히틀러 암살 작전도 여러 차례 입안했던 실존하는 나치 독일의 양심이었다. *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 히틀러 암살을 시도했던 장본인이며 나치 독일의 양심[* 반론 : 이 사람은 융커다. 융커의 심장인 동프로이센이 단치히 회랑으로 월경지가 되었기에 이 사람도 폴란드에 대한 나치의 침공과 절멸에 긍정적이었다. 그가 히틀러를 죽이려던 1944년에는 융커(왕당파)와 총통과의 사이가 틀어진 시기다. 7월 20일 사건이 순수하게 나치에 대한 저항이라고 보기는 힘들다.]이라고 추앙받고 있다. 군인이었지만 암살자 집단의 일원 중 유일하게 히틀러에게 공개적으로 저항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항목에 넣는다. * [[헤닝 폰 트레슈코프]] ☆ * [[https://en.m.wikipedia.org/wiki/Oswald_Freisler|오스발트 프라이슬러]] ★ 후술될 롤란트 프라이슬러의 남동생으로 나치 독일에 항거했다. * [[프리츠 게를리히]] ★ * [[마르틴 니묄러]] ★ * [[크라이사우 서클]] ★ * [[슈바르체 카펠레]] ☆ * [[한스 오스터]] ☆ [[오스터 음모사건]]의 주모자였으며,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백작이 계획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도 참여했다. * [[국기단|흑적금 국기단]] ★--☆--[* [[독일 사회민주당|사민당]]의 준군사 조직이었다.] *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독일 루터교회 목사이자, 신학자. 바르트, 불트만 등이 참여한 고백교회의 설립자. 히틀러 암살계획에 가담하였다가 체포되어 전쟁막바지인 1945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에 유학 중이었으나 머무르지 않고 히틀러의 광기로 가득한 독일로 자발적으로 왔다. 방송과 문서로 히틀러를 반대했기에 요주의인물로 나치는 주시하고 있었다. 유명한 말 중에 "만일 어떤 미친 운전자가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 위로 차를 몰아 질주한다면 목사로서 내 임무는 희생자들의 장례나 치러주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자동차에 올라타서 그 미친 운전자로부터 핸들을 빼앗아야 할 것이다" 한국 민주화 운동 당시 본회퍼는 하나의 모범이자 지침으로 여겨졌다. * [[카를 폰 오시에츠키]]★ * [[https://ko.m.wikipedia.org/wiki/%EC%95%84%EC%9A%B0%EA%B5%AC%EC%8A%A4%ED%8A%B8_%EB%9E%80%ED%8A%B8%EB%A9%94%EC%84%9C|아우구스트 란트메서]](August Landmesser, 1910~1944)★ 1936년 독일해군 훈련함 진수식 당시 다른 모든 사람들이 나치 경례를 하는가운데 혼자 팔짱을 낀채 대놓고 비웃으며 구경하는 모습이 담긴 이 역사적 사진이 남아있다. 그는 본래 취직을 시켜준다는 감언이설에 홀려 1931년에 나치당에 가입했으나, 1935년에 유대인 여성 이르마 에클러와 연애를 하다 당에서 제명당했다. 그는 그해에 에클러와 곧 결혼식을 올리고 장녀를 낳는다. 2년뒤 아내와 자신의 아이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수용소에 갈 처지가 되자 함께 제 3국으로 도피하려 하였지만 실패하고 인종오염죄로 체포당한다. 첫 재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자 나치 법원은 지금이라도 이혼을 한다면 무사할 것이라 경고하였으나, 사랑하는 아내와의 강제 이혼을 끝까지 거부하다 다시 체포되어 아내와 함께 강제수용소로 향한다. 에클러는 당시 수용되었던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학살당했고, 란트메서는 순혈 아리아인이였기에 살아남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다. 하지만 곧 형벌부대에 징집당해 크로아티아 전장에서 실종되었고 작전 중에 사망 한 것으로 간주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